끝에 하나의 주마등으로 
기록되면 좋겠습니다



   대한(大寒)을 앞두고 있습니다. 큰 추위를 증명하듯 영하를 웃도는 요즘입니다.

  ​ 잘 지내고 계신가요.
   생각이 꼬리를 물고, 꼬리가 다시 몸통을 삼키는 밤입니다. 머리맡에 쌓인 생각의 부피가 비대해서, 이불조차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기어이 현재로 끌어와 앓고 있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일종의 무한한 증식이며, 멈추지 않는 세포분열과도 같아서 자주 소진되고, 때로는 스스로를 가엽게 여기기도 할 테지요. 마치 보이지 않는 끈에 묶여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 팽이처럼, 마음은 어지럽게 회전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오모리의 기억을 꺼내어 봅니다. 그곳은 눈의 나라였습니다. 세상의 흰색을 전부 끌어다 쓴 듯, 압도적인 설국이었습니다.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은 쌓인 눈의 높이가 아니라,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던 그곳의 날씨였습니다. 하늘은 변덕스러웠습니다. 흡사 갱년기를 앓는 사람의 감정선 같기도 했고, 갓 사랑에 빠진 연인의 조바심 같기도 했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보라가 휘몰아쳐서, 가로로 흩날리는 눈이 뺨을 때리고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세상이 캄캄해지곤 했습니다. 우산을 쓰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사방에서 달려드는 눈발에 갇혀 나는 잠시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고립되는 것은 아닐까,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끊기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공포가 발밑에서부터 차갑게 올라왔습니다.
   거짓말처럼, 불과 십분도 지나지 않아 구름이 찢어지고 쨍한 햇살이 쏟아졌습니다. 눈보라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내려앉은 햇살은 너무나 투명해서 눈이 환상통을 겪는 것만 같았습니다. 눈 덮인 항구 방파제 위로 쏟아지는 빛은 시리도록 아름다웠고,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눈부신 반전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변덕을 몇 번이나 겪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습니다. 이곳에서 날씨를 예측하고 걱정하는 일은, 눈을 치우는 일만큼이나 무의미하구나. 그저 눈이 오면 모자를 눌러쓰고 걷고, 해가 나면 젖은 어깨를 말리면 되는 것이구나.
   걱정과 안도는 사실, 동전의 양면조차 되지 못하는, 종이 한 장의 두께보다 얇은 '한 끗'의 차이입니다. 공포라 부르는 감정의 이면에는 언제나 '잘 해내고 싶다'는 뜨거운 욕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금 그토록 불안해하는 것은, 당신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삶을 귀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충 살고 싶지 않아서, 시시하게 저물고 싶지 않아서, 당신의 내면은 그토록 격렬하게 파도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처하는 울렁임은, 생에 대한 가장 현학적이고도 진심 어린 애정 고백인 셈이지요.
   불안은 생의 배면에 붙어 기생하는 곰팡이가 아니라, 발효시키는 효모 같습니다. 부디, 스스로를 다그치지 말길 바랍니다. 느끼는 불안의 무게만큼, 당신은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치열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뿌리가 굳건히 흙을 움켜쥐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죽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부러질 뿐이지요.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역설적인 증명입니다.
   우주가 돌아가는 물리적인 인과. 오지 않은 계절을 걱정하는 일, 막연하게 헤엄쳐 젖은 체 사는 일. 그러다 보면 눈보라는 영원할 거라 믿게 되었습니다. 필연적으로 봄이 오듯, 끝에는 반드시 안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좁게 나아가길 바랍니다. 안도란, 걱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걱정을 뚫고 나온 뒤에 찾아오는 깊은숨. 어둠을 통과해야만 새벽이 온다는 진부한 진리 곁에서,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끝에 하나의 주마등으로 기록되면 좋겠습니다. 치열하게 생을 사랑했던 시간들 말이에요.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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