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은 두 사람



   이십사 년 유월 이십팔 일.
   의정부에 갔습니다. 오십 살 차이 나는 분들을 봅니다. 주름지고 낡았지만 왜인지 그런 것들을 좋아합니다. 어릴 적 쌍문동에서 자랐는데요. 나는 조부모 손에 컸습니다. 바쁜 부모님보다 손길이 많이 닿았습니다. 닮고 싶은 두 분을 뵈러 갑니다. 고왔던 모습은 사라졌고 지혜로울 나이에 접어들었습니다. 팔십은 제겐 많은 나이입니다. 백세에 가까워진 시점이니까요. 자연스러운 흐름에 못 이겨 병을 얻기도 하고요. 욕심이 사라진 자리에 여유가 찾아온 것만 같습니다. 그런 분들을 뵈러 갑니다. 변을 잘 못 보는 할아버지 좌약을 들고 말이에요.
   좀 어리광 피울 땐 귀찮음이 컸습니다. 쉬는 날 이게 뭐야 하며 미뤘습니다. 최근엔 시간을 내어 찾아갑니다. 특별한 일이 있다고 하면 할아버지가 병을 얻고 나서부터였나 봅니다. 소중한 걸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 유한한 시간이 죄어 오는 이별에 대한 직감. 여명을 함께하고 싶은 작은 욕심. 눈으로 담고 만지며 느끼고 싶었습니다. 오래 머물고 싶지만 아직 덜 컸나 봅니다. 긴 시간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떠나곤 했습니다.
   예전 할머니가 독사진을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동반자가 그런 부탁을 한다니요. 어른이 되면 그렇게 냉정할 수 있을까요. 그 말씀이 떠나지 못하고 마음속에 맴돌았습니다. 몇 번 찾아갈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갔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정말 이별이 다가올 것만 같았습니다. 감정이 무뎌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눈물이 많은 사람은 종종 울컥합니다.
   독사진을 찍는 일은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 사진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찍어달라 하셨나 봅니다. 젊은 모습을 쓰는 것이 맞나 싶었답니다. 옛 사진을 보니 현재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나랏일을 할 것만 같은 멋진 가장의 모습. 깔끔한 정장과 빗어 넘긴 머리카락. 인상에서 주는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남아있는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짐을 내어주기 싫다는 말. 아직 살아있을 때 버리고 준비한다는 말. 조금은 섭섭한 말입니다. 정리하면서 회상을 하는 일. 생각해 보니 남아있는 우리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누군가의 것이 아닙니다.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돌이켜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것. 자신의 몫이니까요.
   재현아 하며 손을 흔들던 할머니. 육 층 베란다 창을 열고 외치던 목소리. 위치를 어떻게 아시고 그쪽 창을 여셨는지. 오래까지 바라진 않아요. 조금만 더 곁에 머물러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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