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계절에 살고 있나요



   바꿀 수 없는 것인데. 초능력을 얻게 된다면 그러고 싶다. 맞추고 다루고 되돌리고 예언하고 싶다. 이토록 무거운 건 세상에 없어서 옮기지도 못한다. 가벼운 작대기 세 개와 열두 개의 숫자로 나타내기엔 너무나 무겁다. 어느 벽에 흔하게 붙어있는 시계, 고요할 때 더 잘 들리는 맥박과 같은 소리. 그것이 멈춘다면 나 또한 멈추게 되는 것이다.
   시차를 겪고 나서부터다. 비슷한 얼굴을 가진 생명들이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는 걸 알고부터다. 타이밍이라는 것. 어긋나면 완벽하게 아쉬운 것을 알았다. 운이 따라주면 세상 빛은 조명이 되었다.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남자와 여자의 공식적인 시간은 같지만 전혀 다른 시간을 품고 살고 있었다.

   뜨거우면 여름이고 눈이 내리면 겨울이다. 계절은 시간의 대변인이다. 또한 잣대다. 흐름을 자연스레 느끼는 용도이며 추억의 발판이 되었다. 인간의 주름처럼 짙어져 가는 것이다. 나무의 나이테 같은 것이다. 누군가는 늙는 게 싫다며 잡을 수 없는 세월을 놓아버리곤 후회를 한다. 누군가는 십 년 후가 기대된다며 아직 오지 않은 때의 옷깃을 잡아당긴다. 사람 1과 사람 2의 시간은 언젠가 한 곳에서 만난다.
   남자는 늘 겨울을 살았다. 가을에 태어나 단풍이 제일 좋았지만 어느 순간 눈을 좋아하게 됐다. 짧게 지나가는 것들은 늘 아쉬움을 남긴다며 불평을 하며 다시 갈망하곤 했다. 사계절을 난다고 하면 겨울이 제일 길게 느껴졌으며 온도는 차갑지만 포근하다 생각했다. 옅은 파랑의 공기를 들이킨다. 이럴 때일수록 감각은 예민해진다. 냉기는 시간을 늦춘다. 누빔 이불을 덮고 전기장판 속에 있을 때면 나아가던 시간은 느리다 못해 멈춘 기분이었다. 환기를 위해 이불을 벗을 때 멈췄던 초침은 이어졌다. 이때 남자는 하얀 여름에 살고 있었다.

   남자는 여름을 나고 있지만 거의 모든 날을 겨울 속에 살고 있다. 느리고 빠르고의 기준은 남자의 시간이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떠올리며 자신을 내비치고 있다. 같은 여름을 나고 있는 여자와 사람 1,2의 시간은 모른다. 봄이 시작되었을지 가을을 건너고 있을지 알지 못한다. ‘사람 차이’라는 뻔하고 재미없는 단어로 둘러댄다. 그토록 쉽고 간편한 핑계이자 이해의 도구. 차이를 받아들이기 위한 성의 없는 꼬리표를 누구나 달고 있다. 어쩌면 다름을 이해하기 위한 지혜로운 방법일 수도 있겠다.

   어떤 시인이 그랬다. ‘당신은 지금 어떤 계절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지금 어떤 계절을 어떻게 살고 있다고 술술 답하는 상태에 있으면 좋겠다고.
   나는 한적한 겨울에 살고 있다고. 처마에 고드름이 달리고 장독이 익어가는 계절. 무용한 것들을 보고 느끼며 느려진 시간에 온전히 나를 느끼며 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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