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옮겨 적은 한 편의 필사집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곁에 있는 사람을 대신해서 죽을 수 있느냐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느냐고. 어떤 상황이 와도 마다하지 않고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존재한다면 어떤 사랑을 건넸길래 눈을 감는지 의문이다. 자신을 덜어내어 일부만 남겨놓아도 좋을 관계이다. 크기는 달라도 헌신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건 목숨을 거는 일보다는 덜해도 애틋한 일이었다.
   가정을 해보기로 했다. 나는 극의 확률로 당신을 만났다.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고 살던 당신을 길가에서 마주쳤을 때 말을 걸어 보고 싶었다. 평소 모르는 이에게 말을 거는 일은 드물지만 예쁜 모습에 그러고 싶었다. 차를 한잔 마시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용기를 내어 당신 곁에 가서 떨림을 숨기지 못한 채 인사를 건넸다. 이상한 사람을 보듯 눈매는 휘어졌지만 진심이 전해졌는지 승낙했다. 북한강이 보이는 말차집에 가서 야외에 앉았다. 울창한 녹음과 소리 없이 흐르는 강을 배경 삼아 한동안 멍을 때렸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어색함을 깨기 위해 몸부림치는 둘이었다. 세 시간 정도 지났을까. 황홀한 노을이 질 무렵에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질러대는 매미 울음과 열대야는 핑계였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은 가끔 찾아왔다. 당신과 교제를 시작한 것처럼. 곁에 누군가 있다는 건 말로 이룰 수 없을 만큼 행복한 일이었다. 서운함과 슬픔은 다른 형태의 행복이었다. 깊어지는 기분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어서였다. 처음부터 모든 게 같을 거란 기대는 없었다. 다름을 이해하고 싶어서 구석을 살폈다. 먼지가 쌓인 것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면 눈물과 목소리가 오갔는데 같아지려고 애쓰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당신이 밉지 않았다. 오히려 정이 떨어질 거라 생각했던 것들을 마주했을 때 별거 아니었다. 적어도 당신이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완벽한 사람은 세상에 없을 테니까. 나 또한 그런 모습을 들켰을 때 부끄러웠지만 이미 마음은 한 개로 뭉쳐졌을 때였다. 처음엔 산 만큼 컸던 덩어리들이 나중엔 손톱 보다 작은 크기로 다가왔다.
   아플 때도 있었다. 유행성 독감에 걸렸을 때 잠시 만나지 못했다. 나는 일상을 지내며 매번 당신을 걱정했다. 옮을까 만남을 거부했던 배려를 무시하고 약을 사들고 찾아갔다. 두 눈으로 직접 보아야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다. 역병 같은 게 옮아서 아픈 것보다 차가운 바닥에 혼자 내버려두는 게 더욱 힘든 일이었다. 열은 끓어오르지만 한편으로는 추위를 타는 것 같아서 몸이 부서지도록 안아주었다. 죽과 약을 먹고서 밤을 같이 보냈다. 두 해가 지난가을에 나는 당신과 같이 살고 싶었다.

   여느 사람들처럼 막연한 행복을 바라고 살고 싶었다. 닮은 아이도 낳고 부모에게 효를 전하면서 말이다. 늙어가는 당신과 나에게 뻔한 행복은 살아갈 명분이었다. 둘 중 하나가 죽느니 한날한시에 함께 하고 싶을 정도였다. 당신을 사랑하게 된 건 서로가 걸어온 모든 길 덕분이었다. 일반적인 연애를 거쳐 가정을 꾸리고 남들 다하는 인생을 걷는 게 망각하고 있는 특별함이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지만 생에 적히는 글씨는 둘이서 적어 내려가는 거였다. 사랑의 종류가 다양했지만 결국에 남겨두고 지키고 싶은 건 당신과 내가 서있는 장면이었다. 시작부터 설렘을 가져다준 기억이, 감춰두었던 자신도 모르는 모습들을 토해내며 울었던 눈물이, 아홉 번의 계절이 지났을 때 같이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것도 당신이 건넸던 사랑이었다. 나는 당신이 없으면 못 살 것 같다.
   당신은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지루한 틈에 생긴 민들레 꽃이었다. 향기는 강하지 않지만 노랗게 생긴 게 참 예뻤다.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기질을 바꾸게 했던 소금기 있는 바람이었다. 넓은 곳에서 흔들리던 돛을 이끌어주던 당신이었다. 두꺼운 철학 책에 굵은 글씨로 적힌 명언 같았다. 수필에만 빠져있던 사람에게 지혜를 베풀었다. 나는 당신을 옮겨 적은 한 편의 필사집이었다. 보통의 사람에 가까워지게 손을 잡고 발을 맞춰주었다. 당신은 집이었고 나는 이방인이었다. 가족이 되고 싶다고, 언젠가 머리가 하얗게 되어도 아침에 같이 눈을 뜨고 싶었다. 나는 전부를 덜어낼 각오였지만 당신도 같은 마음이어서 서로가 부분만 덜어내어도 되었다. 우리는 그래도 충분했다.

   당신도 똑같겠지만, 어쩌면 더 할 수도 있겠지만 둘 중 하나가 죽는다면 그건 내가 되었으면 했다. 남는 사람에게 큰 짐을 싣는 게 부담이고 사죄할 일이겠지만. 사실 나는 죽음이 두렵다. 몸이 사라지는 것과 당신을 혼자 남겨두는 게 두렵다. 어쩔 수 없다면, 그래야만 한다면 후회 섞인 서사를 남겨두고 떠날 것이다. 어떤 죽음이 다가와도 주저하겠지만, 이유를 묻지 않고 그래야만 한다면 생을 내어주겠다. 다시 만나는 일은 기약 없이 멀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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