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이 좋다는 말에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가수 이소라 님의 노래 <Track9>의 가사이다. 부모님의 사랑이 커져서 세상밖으로 내가 나왔고 그들이 지어준 이름으로 살아간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났지만 살아갈 기회를 얻은 게 굉장히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예쁜 서사를 뭉툭한 글씨로 써 내려간다. 과정엔 사랑하는 엄마 아빠도 있을 거고 친구들, 애인도 있을 거다.
나이기에 소중하다. 걸을 줄도 몰랐던 내가 걸음마를 떼고 뛸 줄도 안다. 말을 못 했던 내가 서툰 말주변으로 주관을 표현한다. 자연스럽게 배우고 극복하는 삶은 그대로 흘러갈 줄 알았다. 시련의 아픔보다 배움의 즐거움이 더 큰 시기였나 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일이 대부분인걸 깨달았다. 잘하고 싶어서 노력했는데 일을 망쳐버린 기억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줄 알았는데 조금은 더딘 날들이 지속됐다. 평범한 하루에 감사하며 살고 싶었지만 불만이 많았다. 무탈한 하루에 감사하자는 말을 쉽게 지키지 못했다. 욕심과 불안이 점차 지치게 만들었다. 슬럼프에 빠진 걸까 주변의 말들이 소음으로 느껴졌고 반복되는 시간이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하고 싶은 것, 즐거운 일도 없었고 그저 살아가니까 살았다. 눈이 떠지니 일어났고 걸으니 앞으로 나아갔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예민한 풍선 같았다.
연초에 사주를 보러 간 경험이 있다. 그런 미신이라도 붙잡고 위로받고 싶어서였다. 남자 혼자서 평일에 방문하는 건 드물다며 신기해하셨다. 전반적인 운에 대해서 여쭈어봤다. 올해는 돈이 덜 모일 것이라는 말. 무난한 해가 될 거라는 말. 여름에 필연적인 인연이 찾아온 다는 말. 건강엔 문제가 없을 거라는 말. 다니고 있는 직장을 별 탈 없이 오래 다닐 거라는 말.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도 건강하고 무탈할 거라는 말. 멀지 않은 미래는 평화롭게 지나갈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마지막에 들었던 말은 촉이 좋은데 사주를 왜 보러 왔냐는 것이다. 촉대로 살아가면 별 탈 없을 것이라며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사주가 될 것이라고 그러셨다.
촉이 좋다는 말이 좋았다. 실제로 촉대로 살아온 경험이 많다. 싸하고 불안하면 우회했고 위험해도 이 길이 맞는 것 같으면 감수하고 직진했다. 결과는 대부분 좋았고 실패가 다가와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과 시간의 약이 발라져 새살이 돋을 땐 간지럽긴 해도 굳은살 덕에 덜 아팠다. 앞으로도 촉 대로 살아갈 것이기에, 무엇보다 자신을 믿어주고 응원해 주기로 했다.
시련을 겪지 않고서 걷고 말할 수 있었을까. 무릎이 다치고 수 천 번 반복하고 나서야 걸을 수 있었다. 옹알이를 되뇌다 엄마 아빠 하고서 말을 시작할 수 있었다. 때로는 운이 좋아서 한 번에 이루곤 하지만 같은 상황이 왔을 때 극복할지는 의문이다.
성장한다는 건 스스로가 나아지고 있다는 말이다.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때로는 다그치고 반성도 하며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으면 한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스스로에게 친절했으면 좋겠다. 가장 소중한 존재로 태어났을 우리들이니까.
느려진 시간은 언젠가 흐른다. 고여서 썩지만 않으면 푸른 물길을 철썩인다. 촉이 좋다는 말에, 자신을 더욱 믿어 볼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