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소각장
내가 있기에 타인도 있다. 중심으로부터 뻗어간 관계의 소용돌이는 잔잔하기보다 거칠다. 완벽한 우리를 바라며 지내본다. 처음이라는 건 설렘과 두려움의 합작이다. 새 학기가 되어 학교에 들어갔을 때도. 새 사람을 사귀는 게 좋으면서도 예쁨 받지 못할까 두려웠다.
늘 자리에서 잘 헤쳐나갔다. 가장 힘들었던 건 공부도 일도 아닌 관계였다. 배려와 사랑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둘 다 미숙했기에 완벽한 관계란 쉽지 않았다.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에 아픔이 더 컸다. 보이지 않는 차가운 공기와 삭막함이 겉도는 가식적인 관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 품는 방법을 몰랐다. 연습을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고 시간이 지나야 깨닫는 원칙이었다. 잘하지 못해서 놓쳐버린 것들, 상처를 줘버리고서 책임지지 못하고 도망쳐 버린 순간들. 다양한 타인을 만나고 여러 경험을 하다 보니 조금은 늘었다. 전보다 잘할 수 있게 되었다. 품고 사랑하고 배려하는 방법을 이제는 좀 알겠다.
얼마 못 가서 무너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속상했지만 그들을 조금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어쩌면 사는 게 이런 일의 연속이 아닐까 싶어서 지겹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제는 잘할 수 있는데, 상처 줬던 사람들은 이미 다 떠나버렸다. 어쩌면 내가 도망쳤을지도 모르겠다.
유튜브 쇼츠에서 우연히 봤다. 어린아이의 머리가 두 개의 쇠기둥 사이에 들어갔고 그 사이에 껴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억지로 당기다간 아이가 다칠 것만 같았다. 그러자 아이의 아빠는 발을 간격 사이에 넣어 쇠창살을 구겨서 간격을 넓혔다. 아이는 다치지 않고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감정적으로 다쳤을 때. 관계에 지쳐버린 상태에서 문제점을 애써 등져 외면할 때가 있다. 침착을 되찾기까지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방황하고 정신을 놓아버리면 일은 더 그르치기 마련이다. 당장 눈에 해답이 보이지 않아서, 해결할 수 없음에 낙담하고 좌절까지 한다. 문제는 영영 풀리지 않을 거다.
문제의 원인으로 향했다. 침착을 되찾은 우리는 곡선이 아닌 직선의 형태로 다가갔다. 꼬여있는 실타래를 푸는 방법은 천천히 푸는 방법 말곤 없다. 실마리를 찾아 얼마의 시간이 들던 차분하게 풀면 된다. 생각보다 단순하다. 느림을 가진 거북이가 부럽다. 느림을 터득해야 하는 우리는 여유가 없다. 거북이가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까.
감정은 오감(五感)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흔히 말하는 희로애락을 뜻한다.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네 가지의 감정에서 파생되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 큰 감정 덩어리에 집중하면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관계는 덤으로 찾아오기에,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기쁜 마음이 들 때면 행복감을 표현하면 되었다. 분노가 차오를 땐 점잖게 화내는 연습을 했다. 슬픔이 느껴질 때면 잠시 동굴에 들어갔지만 금방 다시 나왔다. 즐거울 때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였다.
마음소각장이 있다. 지내면서 필요 없는 감정들을 태우려고 만들어 두었다. 필요 없는 감정들이 많다. 자신을 아프게 하고 더 나아가서 타인도 헤치는 감정 말이다. 당신이 기쁜 마음을 표현하면 함께 기뻐했다. 시기와 질투를 소각했다. 당신이 나에게 화를 낼 때면 원인을 찾으려 했다. 잘못이 있으면 사과하고 오해가 있으면 소명을 했다. 억울함과 분노를 소각했다. 당신이 슬퍼할 때면 위로와 공감을 나누었다. 말없이 안아주었다. 가식적인 생각과 귀찮음을 소각했다. 당신이 즐거울 때면 함께 뛰놀며 노래를 불렀다. 맑고 예쁜 웃음은 덤이었다. 지난 일에 대한 후회를 소각했다.
감정들이 돌아오지 않기를. 좋지 않은 감정들은 이미 그을려서 금방 사라졌다. 어쩌면 불에 닿기도 전에 없어져 가던 것들이 아닐까 싶었다. 재가 되어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잘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서로가 남아있다면 조금 더 나은 우리가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