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을 입고 덮는다



   늦은 점심이었습니다. 정독도서관에 주차를 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벚꽃 명소로 소개되어서인지 사람이 붐볐습니다. 그날 약속이 있어서 방문한 건 아니었습니다. 지나치기 아쉬운 계절이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삼청동을 걸었습니다. 옆엔 경복궁이 있고 작은 골목과 상점들이 둘러싸인 이곳을 좋아했습니다. 누군가의 떼가 묻어나고 발걸음이 오갔던 허름한 길을 만져보았습니다. 흐름이 곁들어있는 장소와 물건은 간혹 사람을 울리는 힘이 있습니다.
   감정이 많을 때는 시선이 여러 곳에 가있었습니다. 주변을 관찰하며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담았습니다. 지나쳤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가지치기를 당한 감정이, 설령 무감정이 되어도 바라보는 시선은 그대로였으면 좋겠습니다. 습관으로 남아 정신 차리라고 어깨를 등을 툭 쳐주길 바랐습니다. 무채색의 시선은 냉철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힘이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차가운 눈빛이었습니다. 화상을 입을 만큼 차가운 건 나와 당신에게도 같았습니다.

   담아온 시선을 볼 때면 지루함을 느꼈습니다. 대상이 예뻐서, 빛이 좋아서 이렇게 담겼구나. 평가받는 결과가 아니라서 그랬을까요. 어느 순간부터 결과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지속하는 이유는 한 번이라도 걷고 싶어서 사람 냄새나는 장소를 딛고 맡고 싶어서였습니다. 이유 없이 돌아가지 않는 세상을 넘어 생활에 잠기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굳이 걷고 나서고 만지고 하는 명분이었습니다. 결과를 생각 없이 지나치니 나머지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명주실로 내린 비단처럼 넓은 파노라마 앨범을 따로 모아두었습니다. 이것은 색이 없어도 예쁘고 고운 모습이었습니다. 발자취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결과를 초래해도 값지고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나는 비단으로 옷을 해 입고 이불을 덮고 삽니다. 특유의 부드럽고 거친 느낌과 색감을 머금고 살고 있습니다. 오히려 변하지 않는 건 담아온 시선이 아니라 걸었던 길이었습니다. 이따금 찾게 되는 길과 비슷한 온도의 채취들이 그리운 이유입니다.
   어느새 행위를 즐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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