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룡
오룡은 사십이 년 생이다. 젊었을 적 길자와 결혼했다. 없는 살림에 다섯 남매를 먹여 살렸다. 젊은 광부로 일했던 사람. 시각에 상관없이 그의 시야는 늘 밤이었다. 뜨겁고 메스꺼운 까마득한 어둠에서 검댕이를 묻혀가며 일했던 오룡. 빛이란 길자와 오 남매였다. 암에서 명으로 가는 방법은 귀갓길 하나였다. 먹고 사느라 바빴던 시절. 어느 누구 하나 큰 탈 없이 잘 자랐다.
남매 중 장남의 아들. 곧이어 장남을 이어 받는다. 손자가 태어났을 적엔 여전히 기운찬 모습이었다. 십 년을 가까이 품어주었던 사람들. 숫자와 글씨는 가르쳐 주지 못했지만 모자랐던 부모의 품을 메꿔주었던 둘. 쌍문동 은행 빌라에서 그렇게 자랐다.
모두가 늙어버렸다. 부모님도 오룡과 길자도. 주름이 무색하고 머리에 서리가 꼈다. 몸은 느려졌지만 공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기억을 쌓을 찰나도, 손을 잡아 줄 시간도 점점 사라져 갔다. 외적인 모습 말고도 많은 것이 변했다. 그는 폐가 죽어갔다. 거미가 한 마리 살고 있는 것 같다. 비어있어야 할 공간이 거미줄처럼 엉겨 붙어 있었다. 탄광의 먼지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긴 시간을 돌아와 말썽을 부렸다. 숨 쉬는 게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병원에 가면 볼 수 있는 전동식 침대가 들어섰다. 철봉을 타던 모습은 어디 갔을까.
사 년이 되었다. 이제는 병원에 가지 못한다. 밥도 먹지 못한다. 귀도 잘 들리지 않아서 큰 소리로 말해야 겨우 알아듣게 되었다. 같이 살며 보살피는 길자의 눈에 다래끼가 났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둘이다. 끌었던 휠체어가 이제는 쓸모가 없다. 힘들게 진료를 마치고 그는 크림빵, 나는 김밥을 먹던 날이 그리워졌다. 식물이 되어간다. 땅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원래 있었던 곳으로, 보다 푸근한 곳으로.
그는 죽음이 두렵다. 병원에 실려가면 죽을 것 같다고 했다. 집에서 정리하고 싶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고집을 이해하기로 했다.
그의 죽음이 두렵다. 처음으로 문자를 가르쳐 준 사람. 언제든 사랑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보냈을 때 나도 사랑한다,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답장이 오지 않는다는 게. 닮고 싶었던 사람이 말라간다는 것. 모든 과정을 담을 수 없어서 이렇게라도 뱉어내고 있다는 것. 욕심은 버려졌다.
애도의 본질은 필연적인 소멸에 대한 인간적인 저항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곧 상실의 축적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그의 손자.
자랑스러운 나의 할아버지, 닮고 싶은 사람.
보고 있지만 보고 싶은 오룡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