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되기



   머리가 물이 빠져 희었다. 자연 갈색인 덕분에 색이 잘 바래지나 보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검게 물들인다. 흰머리는 자세히 들여봐야 보인다. 남들에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꾸준히 오만 원 남짓 외식비를 들여가며 머리를 염색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첫째는 관리하는 기분이 들어서, 둘째는 눈에 보이는 흰머리가 거슬려서다. 굳이 다른 이유를 뽑는다면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을 체감할 수 있어서다.
   두 달이 여섯 번이면 일 년이 지난다. 계절이 네 번 바뀌는 동안 주변은 얼마나 달라졌나. 사람을 곁들인 환경이, 환경을 곁들인 사람이 얼마큼 변했나. 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 틀림없다. 생은 자신을 중심으로 살아지고 나머지는 곁들이는 정도였다. 대게 부정적으로 살아가는 주변 것들은 곧 퇴화하고 있었다. 알아서 퇴화되는 것들은 거름으로 쓰였고 사라지면 흔적도 냄새도 소음도 없는 것들이었다. 그들에게 변화라고 칭하는 건 보통 처음에서 퇴보하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긍정을 추구한다. 마음이 덜 해지고 누추해지기를 꺼려 한다. 나이가 익어가고 그만큼 유연해지면서 스스로와 주변을 아껴주기 시작했다. 사람임을, 사람처럼, 사람됨을 기억하고 살았다. 적어도 예의를 아는 사람은 사람답게 지낸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아니었다. 퇴보하는 변화보다 나아가는 변화를 바랐다. 처음이 충만하다면 유지하는 것만으로 파급된 발전을 누릴 것이다. 부족했다면 채우며 살찌우는 만족을 기를 것이다. 안타깝게도 긍정에 빗댄 변화가 죽어가는 시대에 사는 것만 같다. 남을 해하고 과한 관심을 끼얹는 시대. 마치 변기에 앉아있다가 물벼락은 맞은 기분처럼 더럽다.

   선한 영향력은 줄어들고 기본이라고 하는 것들은 지켜지지 않는다. 쓰레기를 길가에 버리지 않기, 침을 뱉고 다니지 않기, 바라고 한 선행은 아니었지만 고운 마음을 알아주는 일, 배려하는 일, 처음인 사람을 챙기는 일, 누군가의 가치를 아는 일, 대화에 집중하는 일, 상식적인 사람이 되는 일. 지키라고 만든 게 아닌, 통념을 무시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멸시, 예민, 차별, 기복을 두른 채 약자를 찌르고 베었다. 이런 무기는 상처를 깊게 내고 때로는 숨을 끊는다. 모순적이게도 사람을 재생시키는 건 사람이라는 약이었다. 내가 남에게 살아날 수도, 누군가를 일으켜 줄 수도 있는 게 사람이었다.
   처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줏대가 없고 개인의 철학과 배움이 없고, 기준 없이 사는 사람들. 성별과 나이와 태어난 환경이 다르기에 같기를, 하다못해 비슷하길 바라는 건 일종의 욕심일 수도 있다. 그렇다는 건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란 생의 숙제를 갖고 있는 샘이다.
   무작정 존중받기를 바라면서, 사람의 얼굴을 쓰고 나아가길 꺼려 하는 이에게. 그들은 존중받을 만한 사람인가. 적어도 그렇지 않다면 나는 그들의 자멸을 기원한다.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