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단편



   #1 다들 하나쯤 있을
   어렸을 때 네 꿈이 뭐야?라고 물으면 자신감에 넘쳐 “외교관이요!”, “한의사요!”라고 말했다. 그땐 참 순수했는데. 어릴 적 꿈이란 장래희망을 의미했다. 그 직업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그저 어른들이 넌 똑똑하니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했던 것들이 나에겐 장래희망이라며 큰소리치고 다녔다. 어느 순간부터 꿈이란 건 장래희망을 넘어선 추상적인 무언가가 되었다.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온기를 품은 채 이따금 울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까.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직업적인 꿈을 이룬다는 건 큰 행운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앞으로 나아갈 힘이 부족하다. 진정 꿈을 꾼다는 건 자아를 손잡고 끌어갈 실마리다.
   설령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주저 않지 말길. 목놓아 울며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 한편에 품는 것만으로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주니까.
   나의 꿈들에게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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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강요하지 마세요
   둘이 있거나 정적이 흐를 때 대화를 강요하지 마세요. 저는 듣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그렇게 가까운 사이 아니잖아요. 어색하다고 아무 말이나 할 바에 침묵을 즐기시길.
   미역줄기 볶음이 싫어요. 먹어보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본인이 맛있으면 모두가 맛있다고 느낄 거라는 생각. 그거 엄청난 착각이에요. 때가 되면 골고루 잘 먹을게요. 가지나 피망처럼 나중에 그 맛을 알게 될 거라 믿거든요.
   이래라저래라 강요하지 마세요. 준비가 되면 알아서 할 거예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 결과가 좋을 리 없거든요. 뭐든 다 때가 있는 법이에요. 시작점을 정하는 건 나 자신이고요. 오지랖 부려서 참견하려 하지 마세요. 걱정과 강요는 다르거든요. 부탁드립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쉽지 않은 세상이다.


   #3 그런 미신
   지나가면서 휴지통에 휴지를 버렸는데 튕겨져 나갔다. 못 본체 지나치려 했지만 다시 돌아와 주워 버렸다. 항상 물건을 제자리에 놓는 버릇이 있다. 하루는 위치를 바꿨다가 그 물건을 잃어버렸다. 차가 없어도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 일. 머그컵의 방향을 일정하게 돌려놓는 일. 매일 다니는 길을 벗어나지 않는 일. 양치를 할 때 오른쪽 어금니부터 닦는 일. 엄마 생각이 나면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묻는 일. 촉대로 살아가는 일.
   일정하게 해 오던 일을 바꾼다던가, 도덕적인 일을 어기면 벌을 받을 것 같은 느낌. 그런 미신을 믿는 편이다. 괜히 나쁜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나만의 규칙이라고 해야 할까. 누군가는 횡단 도보에 하얀색만 밟는다고, 새해 처음 듣는 노랫말 따라 그 해 운이 바뀐다고 하던데. 다들 나름의 미신을 갖고 있나 보다. 근거는 없지만 작고 귀여운 행동들이 일상에 보탬이 될까 싶어서겠지.
   일종의 루틴이 되어버린 미신. 오늘 하루도 오른쪽 어금니를 닦으며 시작한다.
   이왕 사는 거 웃을 일 많길 바라며.


   #4 읽어보세요
   평소 선물을 즐겨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꼭 해야 할 선물이 있다면 신중하게 고른다. 필요한 물건이 뭘까, 이거 해주면 좋아할까? 그래도 신경 써서 해주는 건데 그 사람이 바라고 좋아할 선물을 고른다. 옷을 골라도 보고 향초와 향수, 핸드크림. 평소 좋아하는 쿠키나 건강식품, 등등. 선물을 한다는 건 꽤나 신중해야 할 일이더라.
   어느 날 책을 선물해 줬다. 뭉툭한 글씨체로 적어나간 손편지와 함께 전했다. 처음엔 책을 선물하는 게 맞나 싶었지만 반응은 예상외로 좋았다. 마침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고, 글을 선물받으니 특별한 위로를 받은 느낌이라고 하더라. 그 후로 선물을 따로 고르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글을 선물한다. 책을 고르며 읽어본다. 책도 읽고 선물도 하고 일석이조다.
   때로는 말보다 글로 전하는 위로가 와닿을 때가 있다. 마음속이 텅 비어있는 공허한 시기에 무언가라도 채우고 싶기 마련이다. 주변 말소리가 소음으로 들릴 때면 쓰거나 읽었다. 쓰는 행위를 하면서 자기 객관화를 비롯해 반성과 후회를 맘껏 하고 다시 일어났다. 읽을 때면 책의 내용에 흠뻑 젖어 공허를 다른 이의 이야기로 채웠다. 글이 가져다주는 감동은 꽤나 거대하다.
   검은 활자들이 어우러져 누군가의 마음을 녹인다. 덧난 상처에 고름 정도는 치워 줄 수 있다. 누군가에게 책 선물을 받는다면, 그건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응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5 부메랑
   불교 경전에 주저제독약 환착어본인(呪咀諸毒藥 還着於本人)이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 독약으로 해를 가하면 결국 본인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뜻이다.
   남의 험담을 하면 뱉은 말들이 내게 돌아온다는 것.
   나쁜 행동을 하면 더 큰 불행이 내게 일어난다는 것.
   누워서 침을 뱉으면 얼굴에 다시 떨어지듯이,
   배려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선의를 베풀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단순한 논리다. 습관이라는 건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배려하는 것을 몸에 배어두면 된다. 남의 험담을 하지 않고 칭찬 한마디, 따뜻한 위로를 선물하기. 옳은 행동을 하고 타인을 배려하기. 실천하려 무지 애쓰는 거 잘 안다. 그래서 본인은 대부분 과묵한 편이다.
   ‘그렇게 착하게 살아서 뭐해’라며 혀를 차는 사람도 적지 않게 보았다. 남을 생각하는 것이 좋은 사람의 기준은 아니겠지만 서로가 할 수 있는 가장 보통의 행동이 아닐까.
   미움은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고 후회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서 생기는 감정이다.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이 무거운 건 어떤 날 타인과 나를 용서하지 못해서였다.


   #6 당신께 드리는 편지
   행복이란 게 뭘까 하며 고민했던 우리들에게. 여전히 답은 정해져 있지 않고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알게 된 건 사소한 것들에 고마워할 줄 알기, 나를 사랑하는 마음 정도 일까요.
   약오르게도, 불행은 반가운 얼굴로 매번 찾아왔습니다.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니잖아요. 어떤 위로도 통하지 않고 주변의 잡음 때문에 집중할 수 없던 날들. 곪아서 커져버린 아픈 구석들. 덧대어진 분홍색 흉터가 두꺼워져서 조금만 닿아도 쓰라린 것들. 이제는 덜 아팠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나아가는 우리들에게.
   너무 잘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보통의 사람으로 살아가도 전혀 부족하지 않다
   존재만으로 소중하다
   살다 보면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 있다
   라며,
   늘 응원하고 고대하던 무언가 찾아오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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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참을성
   조금 더 어릴 적엔 참을성이 많은 아이였다. 어르신들이 하셨던 말들이 떠오른다.

   “고놈 참 의젓하네”

   “아픈 것도 잘 참고, 다 컸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더 나은 내가 되었으면 싶었다. 어린 나에겐 참는 일은 별거 아니었다. 어쩌면 결핍 투성이었던 시절에, 시간만 지나면 모든 게 해결이 된다고 믿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참을성이 없어졌다. 참는다는 건 대부분 보통 통증이 따라다녔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기대와 그리움을 욱여넣고, 몸이 아플 땐 면역의 대가를 치른다. 극복을 기피하고 나태해졌다. 어려운 일이 생길 것 같으면 피하려고 했고 조금만 아프고 힘들면 포기가 목 끝까지 차올랐다. 참을성이 선천적으로 많은 사람은 없던 것 같다. 그저 환경과 의지가 만들어내고 있었다.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어도 유지하고 지속하기 힘든 그런 것이다.
   가진 게 하나 둘 늘어가고 효율을 따지다 보니 귀찮음이 늘었다. 항상 빠르게 무언갈해야 하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해야만 속이 풀렸다. 몸이 과로해서 감기에 걸려도 조금을 못 참고 성질이 났다. 내 탓을 해야 할 상황에도 주변 탓을 하게 되었다.
   다시금 되돌아가야 한다. 어릴 적 어르신들이 그랬듯 의젓한 아이. 칭찬을 누구보다 좋아했던, 아픈 것도 잘 참는 참을성 많은 아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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