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감자는 
기적을 살고있을지 모르겠다



   감자처럼 살자.
   온기와 바람, 수분만 있으면 손길 없이 스스로 싹을 틔우는 감자. 성장이란 나를 깎아내어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니었다. 살아갈 환경만 있다면 자연스럽게 자기다움을 드러내었다.
   서른하나의 일상.
   대개 효율이라는 자로 재단된다. 더 빠르게, 더 유능하게, 더 쓸모 있게. 세상이 정해놓은 궤도 위에서 이탈하지 않으려 애쓰는 매일. 분명 고단하다. 타인이 정해둔 속도에 발을 맞추느라 정작 내 안의 시계가 어떤 박자로 흐르는지 잊어버린 채 살아가기도 한다. 생은 줄곧 효율과 실리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세상은 늘 쓸모를 증명하라 요구한다. 일 인분의 몫을 겨우 해낼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안도한다.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지탱하는 견고한 자존심의 성벽이 된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에 맞춰진 성벽이 높을수록 내면은 점차 메마르고 허기진다. 자존심은 나를 증명할 순 있어도, 온전히 사랑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반면 자존감은 세상이 말하는 쓸모의 바깥에서 자라난다. 보상이 따르지 않아도 그저 좋아서 마음을 쏟는 일,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 없는 사적인 영역에서 나의 존재는 비로소 두툼해진다. 나를 진정으로 살게 하는 것은 타인의 박수가 아니라, 지극히 보통의 삶 속에서 묵묵히 이어가는 나만의 숨이었다.
   숨 쉬는 법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런 꾸밈없이, 가장 나다운 속도로 싹을 틔울 준비를 한다. 무용한 시간 속에서 생명의 가장 고귀한 원리를 배운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뷰파인더 너머를 응시하거나, 백지 위에 문장을 적어 내려가며 다정한 환경을 만든다. 셔터를 누르고 문장을 다듬는 행위는 흩어지려는 나를 한 점의 상(像)으로 응축하는 일이다.
   효율과 실리를 추구하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것은 사치스러운 행위일지도 모른다. 사진 한 장이 밥을 먹여주지 않고, 문장 몇 줄을 적는다고 해서 삶의 문제가 단숨에 해결되지도 않는다.
   무슨 까닭으로 비효율에 마음을 쏟는가. 일상이 마찰열로 타버리지 않도록 돕는 것은 결국 ‘무용한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찰나를 포착하고 마음을 글로 옮기는 행위는 나에게 귀한 윤활제다.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몸부림이 아니라, 삶을 누리고자 하는 조용한 선언이다. 실리만을 쫓는 세상 속에서 굳이 아름다움을 찾는 건, 생존을 넘어선 생활의 증거이기 때문이었다.

   어떤 색을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내게 어울릴 수는 없다. 동경하는 생의 빛깔이 지금의 처지와 어긋나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가까이 두고 바라보는 사람은 결국 빛깔을 닮아간다.
   어울리는 색을 찾아 헤매기보다, 사랑하는 색을 닮아 살아가려 애쓰는 태도.
   어쩌면 감자는 기적을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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