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는 에로스가 있어서 좋겠다



양피지 셋째 장 - 당기지 않은 활시위


 1
고통을 대가로 품어낸 것이다
축복이 내려 열 달 헤엄치다 나왔다
태몽을 믿고 성별을 바라고 예명을 짓는다
그늘은 서늘하고 따사롭다
우거진 잎 사이에 있을 땐
세상을 가진 것만 같다
영원을 바랄 순 없다
다만 주어진 시간을 탈 없이 보내고 싶을 뿐
나무에게서 과분한 것을 받고
꽃은 그만한 것을 건네지 못한다
감히 헤아릴 수 없으므로


2
가여움을 느낀다
길가에 버려진 것들 또는
버려진 사람들을 보며
불행은 멀리 있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
덜 불행한 심신을 나눠준다
본능일 수도 있다
뒤집어쓴 얼굴 가죽은 비슷하되
식탁 위 보리밥 너는 흙 묻은 잔반
수저를 건넬 수밖에 없다
못난 자신을 덜어주는 건
그만큼 연민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음 독에 쌓일수록
완만해지는 자신을 본다


3
동경이다
결핍을 발견하고 부러워한다
가지고 싶은 모습이 저기 있다
그 거울에 비치고 싶다
운명은 늘 신비롭다
필연은 이렇듯 다가온다
닮는다는 건 이토록 간절한 걸까
잡았던 손이 멀어지고
다시는 못 보게 된다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리울 것이다
늘 갈망하고 후회한다
비슷하게 생긴 것이 다가온다면
흔들릴 것이다


4
생전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는 헌신이라 하고
습관 같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다고
아픈 거라고 말한다
그래서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같은 것을 다르게 느끼는 일
평생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대상은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피가 섞이지 않은 관계일 수도 있다
성별이 같거나 다를 수도 있다
누군가는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살고
누군가는 하찮게 여긴다
맛도 형태도 냄새도 없지만
간혹 느껴지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단 하나 확신하는 건
없어서는 안 될 마음이다


5
태양은 강한 빛을 뿜는다
지구에 도달하면 고작 십 퍼센트만 전해진다
전부를 받을 수 없다
당신께 백을 주어도 십밖에 안 된다면
나는 천을 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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