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가 되고 싶은 갈대
은이는 독기가 없다. 오랜 시간 땅속에 닿으면 분해되고 사라지듯이. 또한 그런 무더기가 되어가는 중이다. 흐름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사람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발밑의 뿌리는 휘어갔다. 아니 말라갔다. 앙상해지고 비틀어진다. 양분을 머금으면 굵어질 것들이 휘청거린다. 그럼에도 땅에 박혀 한기를 느낀다. 타고 다니는 개미 발걸음의 미세한 진동과 가끔 내리는 빗물의 습기를 느낀다.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순간이 기억되는 장치.
주름지고 물렁거리고 가벼운 곳.
대용량의 이미지와 추억을 저장하는 곳.
발명되지 않은 타임머신을 대신해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곳.
후회와 환희를 반복해서 연출하는 곳.
바쁘게 흐물거린다. 최근에는 무엇을 살고 있는가. 그러니까 기쁘고 슬프고 진심으로 느끼는 감정을 뱉은 적이 언제였던가. 표정을 지어본 게 어느 때였을까. 시곗바늘이 각대로 움직이는 게 어색한 시절이다. 그때는 계절에 책임을 맡기는 수밖에. 처음 피우고 지고 익어가고 내리는 건 설레는 일이구나. 순서를 맞춰 지나갈 때 겨우 시간의 흐름을 체감한다.
은이는 언젠가 변한다. 변해간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처음과 같은 뿌리를 갖고 박혀있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처음을 좋아해도 되지 않을까. 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변하는 게 못된 것일까. 그저 예쁘게 져 물고 싶었을 뿐이다. 배가 가라앉을 때 양동이로 퍼서라도 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가라앉는 건 은이 아니었으니까. 배를 놓아주고 싶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