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단편 2



   #8 애착을 갖는 일
   애착은 어떠한 대상에 강한 감정적 유대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한다. ‘강한 감정적 유대’라는 말은 밥을 먹을 때나 길을 걸을 때 대상이 생각이 난다는 의미일까. 사람들이 애착 인형, 애착 이불처럼 ‘애착’을 붙이는 걸 봤다. 아마도 곁에 두면 편안을 느껴서 아니었을까.
   반드시 해야만 하고, 안 해도 그만인 것들이 별로 없다.
   좋아했던 일에 애착을 붙이려면 사연이 필요하다. 아마도 그건 우연히 만들어져 왔다. 낭만적인 순간을 담았더니 애착 사진. 어릴 적 먹었던 김 과자를 오랜만에 사 먹었더니 애착 과자. 사람이 적어 조용하고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애착 카페. 주변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자아가 곁든 사물, 장소 그리고 시간들이 있다.
무언가에 애착을 갖기 시작한 건, 평소에 내가 진정 사랑하고 관심을 갖는 일이 줄어서였다. 눈을 돌릴 곳이 필요해서였다. 우연히 찾아온 사연에 갖게 된 유대감은 생각보다 오랜 자국을 남긴다.


   #9 1월
   귀가 시린 바람이 지나고 있다. 작년의 아쉬움은 새해의 기대감으로 변하길. 예쁜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한 발 내디뎌 본다. 시간은 모두에게 기회를 주었다. 잘못한 일에 대한 반성. 누군가를 사랑할 용기. 놓쳐버린 것들에 대한 후회. 익숙함에 대한 권태. 사람에 대한 그리움.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자신감. 그런 것들 말이다.
   제야의 종이 울리는 날엔 늘 티브이나 라이브 방송을 켜놓고 멍하니 시청했다. 한 해의 끝과 동시에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는 매번 설렘이 있다. 한 해를 돌아보며 작년의 여운을 가지고 새해를 시작하는 달, 1월이다. 작년에 잘 살았지? 부족하고 많은 걸 해내지 못했어도 나름 괜찮은 해였기를. 새해에는 무언갈 새로 하기보다 하던 걸 지속해야겠다.
   나무와 꽃들이 피울 준비를 한다. 삭막한 나뭇가지들 사이에 초록은 없긴 하지만, 덕분에 가지들 사이로 하얀 하늘이 촘촘히 보인다. 끝 겨울이 다가올수록 사라질 추위가 아쉬워서 그런지, 바람이 성나게 불곤 했다. 나름 기분 좋은 추위다.
   덩달아 피울 준비를 해야겠다. 알고 있다. 새로운 시작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걸. 봉오리를 트고 예쁘게 피울 용기가 생겼다.
   저기 하나 둘 목련 봉오리가 보인다.


   #10 익숙함에 대하여
   계절이 바뀌면서 꽃이 핀다. 비가 오면 기껏 피워낸 것들이 시들고 초록 잎이 자란다. 쨍하고 해가 뜨고 하늘이 높아지면 수확의 계절이 다가온다. 그러곤 다시 해가 짧아지면서 눈이 내린다. 늘 있던 일들이라 익숙하게 다가온다. 그런데도 특별한 순간들이 있다.
   추웠던 겨울이 가고 벚꽃과 목련, 산수유가 피는 날. 설렘을 가득 안고 꽃을 쫓아다녔던 그런 날. 한 해가 시작하고 벌써 시간이 이만큼 흘렀나 싶을 찰나에 꽃이 핀다. 그때만 잠깐 피우고 지나가버리는 것들. 익숙하지만 아쉬운 것들. 보통 이런 것들은 찰나에 다가왔다가 금방 사라져 버릴 것들이다.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보단 함께 하기에 너무나 짧았던 시간들이 아쉽다. 찰나에 피워내 가장 예뻐지려고 노력했던 것들. 비가 오고 바람이 세게 불어도 가지를 붙잡고 강하게 버텨내었던 것들. 한 해가 지나면 다시 찾아올 것들이지만 올해도 역시 찰나 볼 수밖에 없었던 것들. 그때라도 보아서 좋았던 것들. 익숙하지만 곧 그리울 그런 것들. 다시 피워낼 그날을 기대하고 그동안 피워낼 준비를 하는 거. 익숙하지만 때가 되면 늘 최선을 다하곤 한다.
   익숙함을 비추기 위해서.
   익숙함에 무뎌지지 않기 위해서.
   피워내기 위해서 정성을 다한 경험이 있다.


   #11 비자비 사진관
   네 가족인 우리 집은 각자의 바쁜 생활로 인해 흔하다면 흔한 가족여행을 자주 못 갔다. 미루고 미루다 여름이 한창 익어갈 때, 장마가 슬슬 오던 날 우리는 제주도로 떠났다.
   동생과 나는 시간을 조금씩 내어 나름 신경 써서 여행 계획을 세웠다.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며칠 동안 편하게 지낼 숙소도 예약했다. 맛집이라고 하는 식당들을 찾아서 위치와 동선도 짰고 후기도 꼼꼼히 체크했다. 부모님과 오랜만의 여행이라 그런지 무엇을 좋아하고 어딜 가고 싶어 하시는지 가늠이 안 갔다.
   “여긴 어때?”
   “이 메뉴 어때?”
   “너희가 좋으면 우리도 좋아”
   부모가 되면 자식의 행복이 그들의 전부일까 싶으면서 한편으론 고마웠다. 날씨가 들쑥날쑥해서 간간이 비도 오고 바람도 불었다. 해가 뜰 때면 수목원에 갔고 풍차 해변에 가서 사진도 찍었다. 좋아하는 전시회도 보았고 저녁이면 다 같이 티브이를 보며 맛있는 음식에 술도 기울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일정은 사진관에 가는 거였다. 최근 가족사진을 따로 찍은 적이 없던 터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찰나를 추억으로 남기고 싶었다. 허름한 창고를 리모델링해서 운영 중인 비자비 사진관에 갔다. 컬러사진을 기대하고 갔지만 그곳은 흑백 사진만 찍는다고 하셨다. 흑백 가족사진이라니, 생소했다.
   다시금 사진을 볼 때면 오히려 좋은 선택이라고 느낀다. 흑백이라 그런지 우리만 보였다. 눅눅한 날씨 속 허름한 사진관에서, 네 가족이 웃고 있는 모습이 참 애틋하다.
   평범하지만 함께여서 특별했던 우리들이었다.


   #12 요리

   맞벌이하시던 부모님 탓에 우리 남매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할머니는 아침 계란 프라이에 굵은소금을 뿌리실 정도로 전반적으로 음식이 짰다.
   “라면 국물까지 다 먹어야지! ”
   라면 하나를 끓여도 음식 아까운 줄 모른다면서 짜디짠 국물까지 다 먹으라고 하셨다. 고혈압, 당뇨와 같은 성인병은 집안의 식습관에 따라 유전처럼 내리 발병한다고 한다. 나트륨 폭탄 할머니 식단은 맛은 있었지만, 집안의 건강을 해치는 절대적인 원인이었다. 부모님이 분가하셨을 땐 집안의 음식을 어머니가 해 주셨다. 어릴 적 할머니의 식단에 입맛이 적응한 우리는 어머니가 해주는 저염식 식사가 맛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요리를 못해~~”
   “짜게 먹는 습관 들이면 안 돼. 맛없어도 앞으로 익숙해지렴”
   바쁜 일상을 보내시던 어머니가 매 끼니를 차려주기란 어려웠지만 아침은 꼭 챙겨주셨다. 반찬 투정을 심하게 하지 않았던 터라 차려주시는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밥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어머니의 밥이 지금의 입맛을 유지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군것질과 단것, 짠 것을 잘 먹지 않은 식습관이 성인이 되어서도 똑같이 유지가 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바쁜 나날을 보내며 인스턴트 음식을 먹을 때면 엄마 밥 생각이 종종 나곤 한다. 한집에 살면서 바쁘단 핑계로 밥 한 끼 같이 못하니 삭막만이 맴돈다. 몇 년 전 안면마비를 잠시 앓고, 어머니는 반쪽 미각이 둔해졌다. 그 때문에 저염식을 추구하시던 어머니는 간을 잘 못 맞출 때가 종종 있었다.
   “엄마 이거 너무 짜! ”
   “그래? 그러니까 간 좀 같이 봐달라니깐 ”
   주방에서 오갔던 이야기이다. 찡그린 듯 웃은 듯 오묘한 표정으로 식사하는데 옛 할머니의 식단이 생각이 나서 나름 웃겼다. 짜면 어떻고 맛이 없으면 어쩌랴. 자식, 손주가 굶는 게 싫어서 배운 적도 없는 요리를 그저 삶의 지혜와 경험으로 만든 정성스러운 요리는 사랑 그 자체이다.


   #13 쌍문동
   어릴 적 쌍문동 은행 빌라에 주말마다 갔다. 겨울에 거실에 누워 전기장판에 누빔 이불을 덮고 작은 눈으로 큰 티브이 화면을 뚫어지게 보았다. 우리 집에서는 안 나오는 투니버스 채널이 나왔기 때문이다. 집에서 먹지 못하는 짜고 자극적인 음식들은 덤으로 나를 기분 좋게 했다. 그녀와 함께 티브이를 볼 때면 왜인지 마음이 푸근했다.
   그 시절 여자는 육십넷이었다. 염색을 안 해도 검은 머리에 등도 굽지 않은 뽀글 머리 아줌마였다. 티브이를 보며 뜨개질을 하시곤 했던 여자는 미우나 고우나 손자의 어리광과 장난 섞인 말썽에도 인자하게 놀아주시곤 하셨다. 밥때가 되면 여지없이 감자전을 부처 주셨다. 강판에 갈지 않은 동그라미 모양의 감자를 밀가루 물에 적신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바삭하게 부처 먹었던 감자전. 요즘도 가끔 생각나곤 한다. 나중에 커서 약도 사주고 자전거도 사줄게 하던 아이는 어느덧 어른이 되었다. 그녀는 무릎이 아파서 자전거는 이제 못 탄다. 약은 영양제 말고 사 줄 일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쌍문동을 지나갈 때면 어릴 적 뛰놀던 모습이 생각난다. 이사를 간 집의 동네보다 쌍문동의.  골목과 구멍가게들이 더 정겨웠다. 여자와 나눴던 추억이 살아 숨 쉬고 있어서였다. 달라진 거리는 세련된 모습이지만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낡은 장면은 먼지처럼 은은하게 쌓여있다.
   날씨가 추워지면 감자전 먹으러 가야겠다.



   #14 나를 보살펴주어 고맙구나
   명절에 할머니 댁을 찾아갔다. 문을 열고나니 전 굽는 냄새에 군침이 돌았다. 다들 요리가 한창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은 서로 인사하고 근황 얘기에 시끌벅적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절을 올리고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인사드렸다. 볼 때마다 주름이 늘어가는 두 분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찡하다.
   몇 년 전부터 할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아졌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찾아오는 병마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우리 할아버지도 해당되는지 그제야 알았다. 어릴 적엔 식사하시면서 하시는 이야기들이 고리타분한 잔소리처럼 들렸었는데, 이제는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에 새겨놓는다. 언제까지고 들을 수 없을 이야기들 같아서.
   서울대학교 병원에 모시고 갈 때면 금식을 해야 해서 예민하시다.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가야 하고 병원에 도착해서는 휠체어를 끌고 다닌다. 집에서는 잘 걸어 다니시는데 병원에만 오면 더 아프다고 난리 시다. 병원이라는 공간이 할아버지를 더 위축시키나 보다. 어느 날은 병원에 내렸는데 여기가 척 병원이냐고 물으셨다. 그땐 마음이 정말 철렁했다. 몸이 아프니 정신적으로도 흔들리시는 건가, 치매가 온 건가 하면서 순간 정전이 내렸다.
   병의 진행은 멈추었지만 호전되지도 않는다. 부지런히 일하던 할아버지께 이제는 조금 쉬라고 채워둔 모래주머니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조금만 걸으면 숨이 차고 보살핌 없이 살기 힘든 건 너무 가혹한 게 아닐까.
   절을 올리고 덕담을 들으려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를 보살피느라 재현이가 고생이 많다, 고맙구나”
   “아니에요, 곁에 계셔주셔서 고맙습니다”
   유한한 날들을 곱씹고 기억하자.
   다가올 이별을 잊을 만큼 벅차게 사랑할 기회를 갖길.


   #15 소녀
   어르신들은 보통 음력으로 생신을 지낸다. 그 해는 특별했던 것 같다. 여자의 음력 생신과 내 생일이 같았기 때문이다.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여자는 화분을 가꾸는 걸 좋아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진 못하지만 마음은 매일 보고 싶다. 여자의 집에 놀러 가면 소고기 미역국과 갓 지은 밥을 해 주시곤 웃는 얼굴로 맞이해 주신다. 이가 다 빠져 틀니를 끼지 않고 웃는 모습이 아기처럼 예쁘다.
   여자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퇴근하고 집 근처 꽃집에 들렀다. 생소하게 진열된 꽃들이 예쁘고 향도 좋더라. 걸음이 불편해서 잘 움직이지 못하니 물을 적게 줘도 알아서 잘 자라는 화분을 선택했다. 포장을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다 장미가 꽂혀있는 물병을 보았다. 하얀색, 분홍색, 빨간색 등 색이 참 다양하다. 왜인지 분홍색 장미를 사고 싶어서 이것도 한 송이 주세요 하며 같이 포장했다. 감사, 존경, 사랑의 꽃말을 담고 있다고 한다. 뒤늦게 검색해 보곤, 괜스레 뿌듯했다.
   쇼핑백에 포장한 꽃을 들고 여자에게 선물했다. 한결같이 밥을 챙겨주려 하셨고 같은 자리에서 환하게 웃는다.
   팔십 대 그녀도 꽃 선물은 좋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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