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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남는 죽음이 있다.
   진득한 여름날, 심정지로 실려 온 한 남자. 내 또래의 자식을 둔, 우리 아버지와 같은 나이의 가장이었다. 지하철 선로 작업 중 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맥박은 희미했다. 복강 내 출혈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심장을 되살려야 수술이라도 시도할 수 있었다. 심장은 끝내 다시 뛰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응급실 입구 귀퉁이에서, 두 자식이 주저앉아 통곡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는 아침에 출근했으나, 저녁에는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온 것이다.
   허겁지겁 응급실을 찾는 여인을 만났다. 어디로 가면 되냐는 물음에, 그의 아내라는 것을 직감했다.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차분하게 안내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는 그날 이후 며칠 밤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임상병리학을 전공했다. 첫 직장이었던 수탁기관은 거대한 공장이었다. 그곳이 효율을 따지는 ‘회사’였다면, 종합병원 진단검사의학과는 ‘의료’라는 본질에 조금 더 가까운 공간이었다. 검사실은 환자가 없다. 기계를 다루는 베이비시터처럼, 경고음이 울리면 달래고 쏟아지는 검체를 검사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병원 어딘가 있을 환자를 떠올리며 일했다. 수탁기관의 검체와는 다른 사람 기운이 있었달까. 왜인지 그랬다.
   어쩌다 보니 본질이 가장 폭발적으로 응축되는 곳, 권역응급의료센터로 부서 이동을 했다. 이곳은 눈앞에 환자가 있다. 삶과 죽음이 한여름의 벼락처럼 예고 없이 오고 갔다.
   업무는 단순하다. 피를 뽑고, 현장검사와 심전도를 잰다. 이곳은 참으로 모순적인 공간이다. 일회성으로 스쳐 지나가는 환자와 반복되는 나의 루틴이 교차한다. 매너리즘이 드리울 때쯤이면, 어김없이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지닌 환자들이 찾아오곤 했다.
   나는 환자의 몸에 직접 손을 대는 타 직종에 비해, 검체를 다루고 응급 검사를 하는 비교적 독립된 위치에 있다. 덕분에 넓은 시야로 공간을 바라본다.
   두 극단을 동시에 본다. 락스를 마시고,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삶을 끊으려 했던 사람들. 동시에 대동맥이 터져 살고 싶어도 못 사는, 생명의 불이 꺼져가는 노인도 도착한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과, 간절히 살고 싶었으나 운명이 허락하지 않은 사람이 공존하는 곳. 이곳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가장 흐릿해지는 교차로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짙다. 노숙인과 독거인. 그중에서도 신원이 파악되지 않아 의무 기록에 그저 ‘ㅇㅇ불상’이라고 적히는 사람들이 있다. 비로소 보호자의 유무가 치료와 생존 자체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는다. 보호자 없이 도착한 환자의 차가운 몸은 그들의 고독한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지루할 틈이 없다. 교대로 돌아가는 권역응급의료센터. 팍팍하고 고된 곳이지만, 환자가 위기를 넘기고 '별일 없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다. 그리고 모두가 그걸 바라며 출근한다.
   모순으로 가득하지만, 나름의 질서와 낭만이 있는 부서. 내가 서있는 교차로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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