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us 19951030



   뜨겁고 차갑고, 다정하면서도 시큰둥합니다. 감성적이면서 이성적이고, 열정적이면서 게으릅니다. 욕심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누군가에게 지는 것은 싫습니다. “1인분만 하자"라고 다짐하지만 매번 과하고, 부지런하다가도 나무늘보가 되었습니다.
   무탈함에 감사하자면서 불만을 토로하고, 사람을 챙기며 웃다가도 미운 사람에게 마음속으로는 저주와 욕을 삼켰습니다.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사실 엄마가 더 좋습니다. 보통의 삶을 산다고 말하지만, 그 보통이 얼마나 특별한지 이제야 깨닫습니다.
   열정적이면서도 게으르고, 낭만적이면서도 냉정합니다. 예의를 지키지만 때로는 그 예의가 나를 옭아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가장 가혹합니다.
   문학을 사랑하지만, 모든 글을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완벽한 문장보다는 살아 있는 문장을 좋아합니다. 감정이 다듬어지지 않은 생의 순간을 기록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거짓말을 싫어하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때로는 침묵이라는 우회를 택합니다. 보통의 삶을 원하지만, 그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욕심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이로운 사람이 되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런 역할도 강요받고 싶지 않습니다.
   가끔은 세상보다 느리게 걷고 싶고, 가끔은 누구보다 앞서가고 싶습니다. 외로움을 피하려다 결국 그 안에서 평안을 찾기도 합니다. 상반된 결들이 모여 나를 만듭니다.
   모순. 열정, 침착과 낭만, 그리고 진심. 그것들이 얽혀 지금을 이루고, 여전히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서도 배움을 사랑하고, 고요를 좋아하면서도 무대를 꿈꿉니다. 상반성은 흔들림이 아니라 균형을 향한 진자 운동이라 믿습니다. 결국 모순을 결핍이 아닌 가능성의 다른 이름으로 받아들이며, 오늘의 나를 어제로부터 조금이라도 전진시키려 합니다.
   여전히 알아가는 중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싫증이 나고 또다시 흥미가 생깁니다. 다 안다고 생각한 순간, 새로운 모습을 발견합니다. 발견은 때로 반갑지만, 때로는 불편합니다. 어제와 같은 나인데 오늘은 낯설고, 익숙한 마음인데도 낯선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삶은 매일 달라지고, 그 안의 ‘나’도 변합니다. 어제는 두려움이었고, 오늘은 다짐이며, 내일은 또 다른 색을 띨 것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믿으며 부족함 속에서 제 가능성을 찾아갑니다. 결국 완성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미완이 살아 있게 합니다. 완벽보다 과정 속의 나를 사랑하려 노력합니다. 실패와 후회 속에서도, 모든 감정이 제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멈추고, 무모할 만큼 질주하며, 내일은 어제와 다르게 살아가 보려 합니다. 작은 용기 한 줌과 사소한 친절 한 번이 삶의 결을 바꾼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솔직한 편입니다. 그러나 그 솔직함은 언제나 타인을 향해 있을 뿐, 자신에게는 정직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미움받는 것이 두려워 누군가의 표정이 변하면 마음이 먼저 흔들렸습니다. 상대의 기분을 배려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내 마음은 언제나 뒤로 밀렸습니다. 웃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울고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괜찮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은 날이 훨씬 많았습니다. 감정이 쌓여도 터뜨리지 못하고, 말 대신 침묵을 선택했습니다. 침묵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스스로에게서 멀어졌고, 나중에야 그 거리가 상처였음을 알았습니다.
   방향을 바꿔 살아갑니다. 타인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진실하고 싶었습니다. 느끼는 감정, 불편한 이유, 원하는 관계를 조금 더 명확히 표현하며 삽니다. 거절해야 할 때는 정중히 거절하고, 기뻤던 순간은 과하게라도 감사 인사를 전해봅니다.
   타인에게 억지로 엮이지 않고, 편안한 만큼만 진심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을 공유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거짓이 없기를 바랍니다. 거짓된 친절보다는 솔직한 거리감이 더 따뜻할 때가 많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사람 사이의 온도는 언제나 같을 수 없지만, 진심은 온도차를 견디게 만듭니다. 그런 관계를 원합니다. 관계 속에서 말의 무게가 가벼워지지 않도록, 나의 진심의 무게부터 단단히 다지려 합니다.
   디오네게스는 그랬습니다. 사람을 대할 땐 불을 대하듯 해야 한다. 다가갈 때는 타지 않을 정도로 접근하고, 멀어질 땐 얼지 않을 만큼만 떨어져라.
   나는 물처럼 흘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세게 붙잡으면 흐르지 못하고, 너무 멀면 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만큼만 마음을 내어주려 합니다. 그게 차가워 보일지라도,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일이야말로 관계의 기본이라 믿습니다.
   신뢰는 관계의 근본이자 유일한 접착제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조심하고, 깨어졌을 때는 미련 없이 물러납니다. 마음을 나누는 일은 용기이자 위험이지만, 결국 사람은 관계 속에서 단단해집니다. 때때로 거절과 침묵도 관계를 지키는 예의임을 배웠습니다.
   비밀은 묘한 매력을 가졌습니다. 누군가에겐 의지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무기가 됩니다. 서로의 비밀을 나눈다는 것은 신뢰의 계약이며, 동시에 상처의 가능성을 함께 떠안는 일입니다.
   비밀을 함부로 만들지 않습니다. 대신 누군가가 마음을 털어놓는다면, 끝까지 지키려 노력합니다. 세상에는 가볍게 말할 수 없는 진심이 존재하며, 그 진심을 지키는 일이 곧 사람을 지키는 일이라 믿습니다. 관계의 깊이는 결국 서로의 침묵을 존중하는 데서 자라납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확신, 관계의 완성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확신을 얻기까지의 시간과 행동이, 우리 사이의 윤리라고 믿습니다.

   어른이 되면 대부분의 것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사람이 될 줄 알았습니다. 효를 베풀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웃는 바른 청년이길 꿈꿨습니다. 친구는 많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진심 어린 마음을 주고받는 단 몇 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나는 그 아이가 그리던 이상과 비슷할까요. 대체로 따뜻하고 성숙한 날들을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서툴고 흔들리지만,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 여전히 애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정답을 찾으려 애썼다면, 지금은 질문을 오래 품는 법을 배웠습니다.
   밝게 웃고 삽시다. 타인의 행복이 나의 기준이 되어 흔들릴 때는 자신을 탓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습니다. 비교는 나를 작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말이에요. 누군가의 인생을 부러워하기보다, 나의 하루를 단단히 지켜내는 것이 더 어렵고 귀한 일이라는 것을요.
   어릴 적의 나는 훗날 내가 훨씬 용감한 사람이라 믿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용기를 늦게나마 배우고 있습니다. 미숙하지만, 배워가며 살아가는 것, 어른의 일이라고 믿습니다. 어쩌면 멋진 어른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 배우려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아주 작은 용기를 연습합니다.
   단순하지만 강렬한 이유였습니다. 수없이 나를 찾으려 애쓰면서도 늘 중심을 잃고 방황했던 시간, 그 속에서 문득 ‘나는 나를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물음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나를 이해하고 보듬는 일은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문득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언어로 나를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기록을 통해 증언하고, 읽기를 통해 수정하고, 침묵 속에서 나를 다시 배치하고자 합니다.
   부단히 애써 살아감은 자신을 마주하는 훈련이고, 나를 탐구하는 또 하나의 글쓰기입니다. 타인을 통해 나를 배우고, 나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때로는 부끄럽지만, 부끄러움조차 일부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나를 이해하는 중이며, 과정을 통해 더욱 진실한 나에 가까워지고 싶습니다.
   ‘작별’을 담은 기록을 만들고 싶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마지막 무대처럼 담아내는 작품을요.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장면 속에 남긴 사진, 글, 목소리, 그리고 기억을 배치하고 싶습니다. 대사가 없어도 좋습니다. 표정과 침묵, 그 사이의 여백이 더 많은 말을 해줄 테니까요.
   슬픔만을 뜻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떠남은 곧 남김이고, 남김은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기록은 기억의 예술이며, 삶을 정리하는 또 하나의 언어입니다. 나도 언젠가 기억 속 장면으로 남게 되겠지요. 그때의 기록이 한 편의 추모이자 감사로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삶은 어쩌면 영화처럼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 영화의 감독이자 배우로서, 오늘도 제 장면을 찍어 나가고 있습니다. 빛이 모자라면 기다리고, 소리가 크면 숨을 고르며, 컷 대신 포옹을 택해야 할 때가 있음을 배웁니다. 언젠가 끝이 올 때, 사랑했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나를 설명하려는 일은, 결국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일 같습니다.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말이에요.
   미완의 시간을 사랑하며, 오늘도 나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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