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미 Plus Pen S 광고 아닙니다
고래 책방에 들렀다. 네 층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사람과 책이 섞여 있는 공간이었다. 북카페라지만, 음료나 빵을 주문하지 않아도 된다. 이곳에서는 언제나 책이 먼저라고 했다. 낯선 종이 뭉치를 골라 읽어도 보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층으로 갔다.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주제가 자화상이었다. 도자기로 된 여러 가지 얼굴 형상을 감상했다. 그러곤 방명록을 적었다.
나를 표현하는 아름다운 방법
손에 쥐어진 모나미 펜. 정확히는 모나미 Plus Pen S 라고 하는 하늘색 펜이었다. 잊을까 싶어,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두었다. 필기감이 만족스러워 집으로 돌아와 쿠팡에서 바로 주문했다. 나는 이 펜으로 무얼 쓸까. 그때의 촉감을 느끼려 괜히 흰 종이에 선을 그었다. 내 이름도 적어보고 너의 이름도 적었다.
나는 글씨를 못쓴다. 악필 중의 악필이며 가끔은 나조차도 다시 읽다 보면 헷갈린다. 펜을 탓하기도, 종이의 질감을 탓하기도 해봤지만 역시나 글씨를 쓰는 마음가짐과 손가락이 문제다. 필사를 하며 연습해 볼까 싶었지만, 그도 얼마 가지 못했다. 글씨 잘 쓰는 사람을 보면 타고난 것만 같다. 그런데 모나미 Plus Pen S는 악필도 꽤나 멋들어지게 쓰인다. 휘갈겨 쓴 듯, 일부러 연출한 듯 날카롭고 뭉툭한 글씨체다. 나름 만족스럽다.
악필이 곧 예술로 승화될 것만 같은 기분. 이것으로 무얼 쓸까. 매일 메고 다니는 가방 속에 펜을 들고 다녔다. 저녁으로 한우 곱창을 먹었다. 네가 화장실에 간 사이, 결제한 영수증을 찢어 몇 자 적었다. 몇 번 접어 건넸는데 이게 뭐냐며 펼쳐보곤 활짝 웃는다. 그날 이후로 영수증을 가방에 모으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빈티지 레터.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자연스레 낡은 무언가처럼. 떼가 어느 정도 물들고 시간을 견딘 것에 마음을 덧댄다. 검은 선 몇 개면 충분하고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은, 그저 지금의 마음을 남기는 활자 놀이.
쪽지 모양으로 손톱 그어 접는다.
보잘것없는 게 닿는다.
이가 보이게 닮아 웃는다.
나를 표현하는 아름다운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