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light
입추를 지나고 있습니다. 절기의 절반이 흘렀습니다. 곡식이 여무는 시기에 비가 오지 않아 다행입니다. 덕분에 파스텔 톤 하늘을 자주 보는 요즘입니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면 창을 열어 보았는데 잠깐이지만 황홀한 기분이었습니다. 내게도 황혼이 매일 찾아왔습니다. 곁에 없을 때면 아쉬운 마음입니다. 눈에 담기는 것들이 무용하고 거추장스러운 이유는 함께하지 못할 때 더욱 그랬습니다. 한 손 잡고 다닐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시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도처에 널린 꽃과 달을 건네봅니다.
신 커피를 마실 때면 입맛이 참 비슷하다 생각했습니다. 케냐산 원두가 산미를 가진 커피라고 했습니다. 원두를 고를 수 있는 카페에 가면 늘 산미 있는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군것질을 피하던 사람이 케이크를 먹습니다. 얼그레이 또는 티라미수가 제법 맛있습니다. 포크 한 개로 떠먹여 주니 사랑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순한 우유로 만든 흰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아다녔습니다. 지점이 많이 없는 터라 우연히 발견할 때면 그토록 반가운 마음입니다. 입이 짧고 쉽게 물리며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기피하는 것. 식음이란 흔한 일에도 하나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아이를 보았습니다. 두 살 베기 정도 되어 보이는 딸이었습니다. 머리를 예쁘게 땋고 아빠 품에 안겨 있었습니다. 빤짝이가 풀어진 유리구두 같은 신발을 신고 있습니다. 왜인지 뭉클하고 한껏 부푼 기분이었습니다. 비누 묻은 손을 비빌수록 불어나는 거품처럼 기대가 몸의 일부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손을 씻고 싶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떠내려갈 거품들이지만 반짝이는 상태를 최대한 간직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예쁜 신을 신고 있는 아이를 보는데 당신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대부분 행복한 요즘입니다. 자주 보아도 아쉬운 모습은 마음속 액자에 걸어두었습니다. 중지에 낀 반지를 구르듯 습관처럼 이름을 머금고 삽니다. 서로에게 화가 생긴다면 실수로 꽉 잠긴 뚜껑처럼 열기 힘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드물어지고 닮아갈 테니까요. 곁에 있는 동안 누추한 모습은 덜어내며 도덕적이고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기복 없는 나로서 오랜 날 당신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